주일설교
by 방송실
202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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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배척받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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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배척받을 때 (막 6:1-6) 예수님은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던 시기에 고향 나사렛을 찾으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배척은 예수님께서 사명을 따라 걸어가실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을 지키고 진리 위에 서고자 할 때,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거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배척받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익숙함)이 은혜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2-3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 사람은 우리가 아는 목수 아닌가? 마리아의 아들 아닌가?” 하며 예수님을 과거의 기준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은 영적 감각을 둔하게 만들고 은혜를 놓치게 합니다. 우리가 예배, 말씀, 교회, 성도들을 익숙하게 대하는 순간 기대와 설렘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도 보지 못합니다. 익숙함은 배척의 시작이며, 은혜를 가리는 영적 장막이 될 수 있습니다. 2. (배척)은 사명을 따라가는 자의 길입니다 (4절)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예수님께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받는 것은 진리를 따르는 자, 사명을 붙잡는 자가 걸어가는 필연적 과정입니다. 오늘 성도도 신앙을 지키려 할 때, 오히려 가족, 친구, 직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오해받고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에 우리가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이 더 중요합니다. 배척은 사명의 끝이 아니라 사명의 확인입니다. 3.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5-6절) 성경은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라고 기록합니다. 능력이 없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배척하고, 진리를 거부해도,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척받을 때 포기하거나 닫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믿음이 배척을 은혜의 통로로 바꿉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무엇을 익숙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그 익숙함 때문에 놓치고 있는 은혜는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봅시다. 2. 최근에 신앙 때문에 불편함, 오해, 외로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나누고, 그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서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by 방송실
20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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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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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다 (막 5:25-34)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에는 치유되지 않은 고통이 자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속 여인도 그러한 상처와 고통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으며 사회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심지어 예배 자리에서도 멀어진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상처의 자리에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결국 치유와 회복의 복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1. 상처의 자리에서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27-28절) 그녀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소문이 희미한 희망이 되었고, 믿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절망의 자리에서 피어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녀는 상처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상처의 자리에서 싹트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 상처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상처의 자리가 드러날 때 우리의 절망이 주님 안에서 믿음의 새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상처 난 자의 (손길)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30-32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의 손길을 느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이것은 예수님께서 믿음의 손길, 절박한 마음의 터치를 느끼셨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처를 모른 척하지 않으십니다. 눈물의 자리, 외로움의 자리, 밤마다 아파했던 그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상처 난 자의 손길을 감지하시고, 그 손길을 향해 멈추어 서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께 더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3. 예수님은 (상처)의 흔적을 (은혜)의 발자취로 바꾸십니다 (33-34) 고통은 끝이 아니라, 은혜의 문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더 이상 숨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상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간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상처도 예수님을 만날 때, 은혜의 이야기로 바뀝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원하지 않으시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상처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흔적이 은혜의 발자취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길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회복과 사명의 삶을 걷게 될 줄을 믿습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어떤 상처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그때의 치유 경험이 내 믿음의 이야기로, 혹은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된 적이 있나요? 2. 지금 내 삶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가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해 숨기기보다 예수님께 믿음으로 내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상처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발자취가 드러나길 믿으며 기도해 봅시다.
by 방송실
202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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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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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된 나 (창 1:26-31) 오늘날 과학계에서는 우주와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이란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그리고 인간의 생명은 마치 치밀한 설계자가 미리 계획해 놓은 듯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주장이지요. dna의 복잡한 암호, 우주의 미세한 균형, 생명체의 정교한 시스템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설계자는 누구일까요?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놀라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26절) 2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을 이어받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 속에서 그분의 사랑과 정의를 나타내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알고 채우시는 (공급자)이십니다. (29절)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세상을 준비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물과 공기, 땅과 식물을 준비하신 뒤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미리 예비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자 배려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준비하셨고,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필요한 것을 이미 아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고 (완벽)합니다. (31절) 31절은 창조 이야기의 결론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것은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세상을 보며 기뻐하셨고,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심히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은 조화로웠고, 질서가 있었으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선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세상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그 질서가 무너지고,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그 처음의 자리로, ‘심히 좋았더라’의 자리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나눔 및 적용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나”라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2. 지금 내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 영역을 오늘 하나님께 다시 맡길 수 있겠습니까?
by 방송실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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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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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패션 (롬 13:8-14) 오늘날 사람들은 패션에 참 민감합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고, 때로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옷은 몸을 가리는 기능을 넘어서, 나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입어야 할 옷, 곧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삶”을 강조합니다. 과연 세상의 패션이 아닌, 성도의 참된 패션은 무엇일까요? 1. 그리스도인의 패션의 기본은 (사랑)의 삶입니다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절) 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패션의 기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먼저 보여야 할 옷차림입니다. 내 옷을 화려하고 멋지게 입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먼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하는 겁니다. 우리가 사랑을 입고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2. 그리스도인의 패션은 (어둠)을 벗는 것입니다 (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2절) 고 성경은 말합니다. 신앙은 옛 옷을 벗는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옛날 옷은 ‘어둠의 일’을 뜻합니다. 즉, 방탕한 일, 술 취한 일, 음란한 일, 호색한 일, 다투거나, 시기한 일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복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죄악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패션은 날마다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는 삶입니다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4절) 고 성경은 말합니다. 어둠과 죄의 옷을 벗어버렸다면 깨끗한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미 구원받은 자들은 깨끗함을 받은 자들입니다.(구원/갈3:27) 또한 날마다 깨끗한 옷을 입어야만 하는 자들입니다.(성화/골3:10) 이처럼 구원의 옷을 입은 자들의 삶은 날마다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 멋을 내지만, 성도의 참된 멋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있습니다. 나눔 및 적용1. 나는 구원받은 자로서 날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습니까? 어둠의 옷(죄,불평,시기,다툼)을 벗고 빛의 옷을 입기 위해 지금 당장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나요? 2. 가족, 이웃, 직장, 학교 등 일상에서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사랑으로 세팅되어 있습니까?
by 방송실
202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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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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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동행 (마 9:1-8) 우리는 살아가면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짐을 혼자서 옮기기 어려울 때 친구나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고, 시험이나 어려운 과제를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울 때 누군가의 격려와 조언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기적을 경험하기 어렵지만,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동행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1. 믿음의 동행은 함께 (데리고 오는) 믿음입니다 (2절) 오늘 본문에서 중풍병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고,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의 권능과 만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 자신뿐 아니라,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홀로 세워지기 어려울 때,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향한 그들의 헌신과 믿음이 치유의 통로가 된 것처럼, 우리도 주변 사람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함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믿음의 동행은 (죄 사함)받는 치유로 연결됩니다 (2,6절) 예수님은 중풍병자 자신뿐 아니라,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권능은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죄를 사하는 근본적인 치유를 제공합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영혼의 참 자유’를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중풍병자를 향한 믿음의 동행이 그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었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서로를 붙들어 줄 때 삶 속에서 영적 회복과 용서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 믿음의 동행은 개인의 신앙적 (책임)을 일깨웁니다 (6-8절)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후,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6절) 이는 그를 데려왔던 동행자들이 들고 왔던 침상을 이제는 중풍병자 자신이 들고 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랜 세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했던 삶에서 이제는 자신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동행은 단순히 누군가를 끌고 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과 책임으로 이어질 때 완성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지금 누군가를 위해 믿음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2. 오늘 나는 어떤 작은 행동을 통해 신앙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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