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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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넘어 구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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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넘어 구원으로 (눅 17:11-19) 오늘 본문에는 나병환자 열 명이 등장합니다. 당시 나병은 사회와 공동체에서 완전히 격리되는 고통스러운 상태였습니다.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는 멀리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멀리서 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병이 고침받은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치유를 넘어 구원으로 나아가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1. 예수님은 우리 삶에 (치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중에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열 명이 모두 치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가지 아픔과 문제가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관계의 갈등, 마음의 상처와 같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치유와 회복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2. 치유를 받은 모든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열 명이 치유를 받았지만 예수님께 돌아온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질문에는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합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3.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구원을 경험하고, (구원)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열 명 중 한 사람은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은 모두 치유를 받았지만 이 한 사람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치유는 몸의 회복이지만 구원은 삶 전체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시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와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에 머물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나았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자신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소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돌아온 사람은 결국 그 은혜를 전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치유 이후에 주님께 감사하며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까? 2. 이번 주에 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한 가지 실천은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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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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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사도행전 2:46-47) 오늘날 교회는 이전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과 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 간의 관계는 점점 약해지고, 신앙은 개인화되고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삶을 나눌 자리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초대교회는 거대한 건물도, 체계적인 프로그램도 없었지만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모였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며, 함께 울고 웃는 공동체가 교회를 살렸습니다. 교회는 주일 예배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삶을 나누는 공동체가 살아날 때 교회도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어떻게 교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목장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1. 서로 모이기를 (힘쓸) 때 교회가 살아납니다(46절).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여기서 ‘날마다’는 매일 모였다는 의미를 넘어 공동체가 삶의 중심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바쁘고 분주하여 매일 모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빈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살기 위해 시간을 내어 모이는 것입니다. 모든 목장이 같은 날 모일 필요는 없습니다. 형편에 따라 가능한 시간에 모이면 됩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모임, 포기하지 않는 모임이 중요합니다. 모이기를 힘쓸 때 공동체는 살아나고, 공동체가 살아날 때 교회가 살아납니다. 2. (밥)을 함께 먹을 때 공동체가 깊어집니다(46절). 초대교회는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나눔입니다. 밥을 먹다 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기도 제목도 알게 됩니다. 때로는 기쁨도 나누고, 눈물도 나누며,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공동체로 세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목장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설교를 듣는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사람은 혼자 신앙생활을 할 때 쉽게 지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함께 나눌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목장이 살아날 때 교회는 힘을 얻습니다. 3. 목장이 살아날 때 하나님이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십니다(47절).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렇게 모이고 나눌 때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부흥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숫자를 늘리려 애쓰기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시면 목장이 살아나고 관계가 따뜻해지며 교회에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시고 교회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이고, 나누고, 서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더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나눔 및 적용 1. 요즘 내 신앙이 개인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이번 주 나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예: 목장 모임 적극 참여, 식사 나눔, 한 사람 위해 기도/연락 등)
by 방송실
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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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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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교회 (행7:30-38) 오늘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광야를 하나님의 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분명하게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며 일하셨던 자리로 증언합니다. 스데반은 그 공동체를 ‘광야교회’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광야교회가 어떤 공동체였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광야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자리입니다(30~34절). 모세는 애굽에서 도망쳐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실패한 시간, 가장 침묵이 길었던 4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광야가 거룩해진 이유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광야는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만나시는 자리인줄로 믿습니다. 2. 광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35~36절). 하나님은 모세의 억울함을 즉시 해결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방식의 일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의 시간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은 시간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셨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일이 멈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깊이 일하고 계신 자리입니다. 광야교회는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내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배워가는 공동체입니다. 3. 광야교회는 (말씀)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37~38절). 스데반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전히 전파되길 소망했습니다. 이처럼 광야교회는 말씀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없을지라도, 때로는 환경이 불안정해도, 광야 한가운데서도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광야교회를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지금 나의 삶에서 ‘광야’라고 느껴지는 자리는 어디이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만나고 계신다고 느끼십니까? 2. 나는 지금 이 광야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먼저 기대하며 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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