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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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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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요일 4:7-13)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구두 수선공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그날 그가 만난 것은 추위에 떠는 노인과 힘겹게 아이를 돌보는 여인,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섬겼고, 그날 밤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기적이 아니라 사랑이 실천되는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프로그램이나 규모가 아니라 ‘사랑’으로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 교회는 (사랑)의 근원에서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본문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 사랑이 만들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난 사람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선택적인 성품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필연적인 증거입니다. 만일 우리 안에 지속적인 미움과 냉담함이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할 영적인 문제입니다. 2. 교회는 (십자가)의 사랑을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말로 설명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의 기준이 되었고 사랑의 완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희생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섬김을 미루며, 관계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진정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이 받은 십자가 사랑의 깊이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3. 교회는 사랑을 통해 사랑의 (하나님)을 보이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선언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보이게 됩니다. 즉, 사랑은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만나게 됩니다. 교회 안에 사랑이 있다면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히 말로서 하나님을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최근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거나 나눈 순간이 있었는가? 2. 이번 주에 내가 먼저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by 방송실
202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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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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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 (요 21:15-17) 성경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실패를 경험하며 제자로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책망하지 않으시고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실패를 정죄하는 질문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실패한 사람을 어떻게 회복시키시고, 그 회복을 어떻게 사명으로 이어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은 (실패)를 묻지 않으시고 (사랑)을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실패를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왜 나를 부인했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대신 동일한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정죄의 질문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시키는 질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과거로 묶어 두지 않으시고 현재의 관계 속으로 다시 초대하십니다. 신앙의 본질은 성취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실패보다 지금도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보십니다. 2.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곧바로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는 사명이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명의 기준이 능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그 마음은 영혼을 향한 돌봄으로 이어집니다. 전도 축제를 통해 교회에 온 한 영혼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양’입니다. 그리고 그 양을 돌보는 일은 사랑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맡겨집니다. 3.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을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신 후 그를 멈추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시 부르시고, 다시 세우시고, 다시 걸어가게 하십니다. 회복은 과거를 덮는 위로가 아니라 미래를 여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실패한 상태로 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끝난 이야기가 아닌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그 질문이 오늘 우리의 신앙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2. 나는 지금 실패, 후회, 혹은 약함 때문에 주님 앞에서 멀어져 있지는 않은가요? 그 자리에서 오늘 나에게 다시 묻고 계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 앞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요?
by 방송실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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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저 영원한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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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저 영원한 천국으로 (요 14:1-6) 1. 우리는 왜 이렇게 근심하며 살아갈까요? (인간의 현실) 여러분 요즘 가장 많이 드는 걱정이 무엇입니까? 건강 문제, 노후 문제, 자녀 문제 등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안고 살아갑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이루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오가는 진자와 같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결핍이라는 고통과 풍요로움 속의 공허라는 사이를 오고 가는 무게추에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는 더 깊은 본질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에 대해 ‘인간 안에 있는 근심’이라고 표현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 14:1)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인간의 중심 문제를 ‘근심’이라고 정확히 짚어 꿰뚫어 보신 것이지요. 2. 그렇다면 인간의 근심은 왜 해결되지 않을까요? (근심의 원인) 왜 우리는 이렇게 흔들릴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이 본질적인 해결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져도 불안하고 많은 것을 이루어도 공허합니다 왜냐하면 채워야 할 영혼의 자리에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것들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육체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생각과 마음, 그리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체는 눈에 보이지만 생각과 마음 심지어 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나무와 돌, 보이지 않는 것들에 기대어 마음의 불안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길을 잃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영혼의 회복은 오직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3. 예수님은 인생의 길이자 영원한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해결과 초청) 이때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은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 아니라 길 자체가 되신 분입니다.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는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길이 되어주셨다는 말의 의미는 인생의 문제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어 주셨다는 말은 혼란의 문제 해결해 주심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생명이라 말씀하신 뜻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 14:2)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해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삶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행복도 유한합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고통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시작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여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헤븐 라이프 축제를 통해 이 땅에서의 삶을 넘어 영원한 천국으로의 삶으로 나아가시길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by 방송실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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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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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마 28:1-10)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의미는 단지 죽음을 이기셨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여러 차례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자들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의 아침, 그 모든 말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1.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선포된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십니다. 십자가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구원이 완성되는 자리였습니다. 인간의 시선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지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2. (두려움)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여인들은 무덤을 향해 나아가면서 두려움과 슬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빈 무덤과 천사의 모습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의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두려움의 현장이 곧 하나님의 계시의 자리가 된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상황은 더 어두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깊은 자리임을 믿습니다. 3. 부활은 (증언)으로 이어집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머물러 있지 말고 가서 전하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 또한 직접 나타나셔서 같은 사명을 다시 확인시키십니다. 부활은 개인의 깨달음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반드시 공동체를 향해 흘러가야 하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여인들은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움직였고, 전했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들은 것을 간직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전하고 나눌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믿음이 됩니다. 부활의 능력은 믿는 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증인의 자리에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그 사실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나는 어떤 믿음의 태도를 보이고 있나요? 2. 이번 주에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나 믿음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며 증언하겠습니까? (다음 주 헤븐라이프 축제에 그분과 같이 오면 좋겠습니다.)
by 방송실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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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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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 (눅 15:25-32) 사람은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전혀 다르게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여시는 장면입니다. 밭에서 돌아오던 맏아들은 집 가까이에서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섭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앞에서 그 자리에 선뜻 들어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 축제를 앞둔 지금,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 도전을 던지며 묻습니다. "너는 지금 이 기쁨 안으로 들어오고 있느냐?" 1. 하나님은 잔치 자리에 늘 초대하시며 (권하는) 분입니다. (28절) 맏아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냅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라고 화내며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꾸짖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직접 밖으로 나와 맏아들을 권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이들을 천국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머뭇거릴 때도 직접 찾아오셔서 기쁨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은 맏아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는 맏아들의 분노를 꾸짖지 않습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틀렸다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관계를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 보이십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아들을 보며 기쁨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비난과 정죄가 아닌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은 맏아들도 결국 기쁨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의 잔치 초청은 둘째 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밖에 서 있는 맏아들을 위한 잔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맏아들도 이 기쁨 안에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래 믿어온 사람도, 삶에 지친 사람도, 전도에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도 이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헤븐 라이프 축제는 새로운 영혼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에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가는 기쁨의 축제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앞에서 맏아들처럼 머뭇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있지는 않았나요? 2. 어떤 방법으로 함께 헤븐 라이프 축제에 참여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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