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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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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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느 2:11-20) 사람들은 누구나 수치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수치란 감추고 싶은 실패, 드러나면 안 될 것 같은 연약함, 남들 앞에서 작아지게 만드는 기억들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7절에 나온 수치는 '남들로부터 오는 비난, 치욕스러움, 조롱과 조소'를 의미합니다. 즉, 당시 예루살렘은 완전히 붕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주변 많은 민족들에게 '수치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치를 고스란히 느헤미야와 유대 백성들이 경험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들의 수치를 어떻게 해결해 주셨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12, 17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에 홀로 일어나 무너진 성벽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은밀한 답사의 동기는 다른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주신 것 - 즉,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거룩한 부담감'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회복의 일을 시작하시며, 한 공동체의 부흥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렇게 12절에서 시작된 이 마음은 17절에 이르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는 구체적인 결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일을 위해 모두가 힘을 내길 원하십니다. (18절) 느헤미야는 혼자만의 확신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우신 일과 왕이 허락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처럼 하나님이 한 사람의 마음에 주신 비전과 꿈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힘을 내는 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에 개인의 소명이 공동체의 사명이 되고, 그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비로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형통)의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20절)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공격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안팎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연결되어 있던 정치 권력자였던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비웃고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또다시 대적자들의 조롱과 비웃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느헤미야는 자신의 권력이나 왕과의 친분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가 붙든 것은 '하늘의 하나님' 한 분이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하나님이 지금 내 마음에 주신 ‘거룩한 부담감’은 무엇입니까? 2. 이번 주 함께 힘을 내야 할 선한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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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도 선한 손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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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도 선한 손이 있습니까?(느 2:1-10) 우리의 인생에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손, 친구의 손,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통해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람의 손을 통해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손은 나를 도와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손은 나를 확고히 붙드십니다. 사람의 손은 변하고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손은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로 사람의 손을 통해 우리를 도우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의 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을 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느헤미야를 이끌어 가신 하나님의 선한 손을 살펴보고, 우리 인생에도 그 선한 손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기도하는 자에게도 때론 감출 수 없는 (근심)이 얼굴에 드러날 수 있습니다. (1–3절) 사실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근심한 기색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신하로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그의 얼굴에 근심이 드러났습니다. 예루살렘의 소식 때문이었죠. 그 상황을 듣고 넉 달 동안이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무게가 결국 그의 표정과 삶에 나타난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억지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걱정거리가 있을 때에도 그 마음을 솔직히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문 사람에게는 기도의 여러 흔적들이 남습니다. 2. 결정적 순간의 기도는 (평소)의 기도에서 나옵니다. (4–6절) 왕은 느헤미야에게 갑자기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4절) 느헤미야에게는 긴 기도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대답합니다. 넉 달 동안 하나님을 찾았던 기도가 결정적인 순간의 기도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과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내 삶의 신앙을 나타냅니다. 3. 하나님은 기도하는 인생에게 자신의 (손)을 통해 도우심을 나타내십니다. (7–10절) 느헤미야는 왕에게 조서와 목재를 요청했고, 왕은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모든 과정 뒤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을 발견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8절) 하나님의 선한 손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응답과 인도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하신다고 해서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대적, 즉 삶의 문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 가운데서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느헤미야처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해 온 근심이나 기도 제목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지금 내가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어떻게 붙들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나누어 봅시다.
by 방송실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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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연합의 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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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연합의 복을 누리십시오 (시 133편) 사람에게는 항상 두 가지 삶의 모습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개인주의적 삶이요 다른 하나는 공동체적인 삶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존중받아야 하며,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 두 가지 영역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순적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개인이 존재해야 서로 간의 연합이 이루어지며, 누군가가 있어야 개인이란 것이 정의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살펴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왜 '타인(상대방)'이란 존재를 허락하셨으며, 서로 간의 연합을 통해 무엇을 원하시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참된 연합은 하나님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1절) 참된 연합은 연합의 원래 목적과 의도가 바르게 펼쳐진 모습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연합의 참 목적이 하나님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연합한 자들이 하나님의 이 두 가지 성품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그들 안에 있는 사랑과 배려, 우정의 모습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회와 성도는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도록 날마다 말과 행동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오늘도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맙시다. 2. 참된 연합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의 통로가 되어 (복)이 흘러가게 됩니다. (2절) 오늘 말씀에서는 참된 연합을 기름이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증표였습니다. 다윗도 왕이 되기 전 기름 부으심을 먼저 받게 됩니다. 또한 제사장도 그와 같은 기름 부으심을 받고 나서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 간의 참된 연합 가운데 하나님은 성령의 기름을 부으십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3. 참된 연합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미리 경험하게 합니다. (3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땅에서 미리 '영원한 생명'을 맛보는 인생입니다. 이를 개인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맛보는 것이 또한 축복입니다. 이것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참된 연합을 이루지 못한 현실적 상황이 우리들 가운데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참된 연합을 기대하며 함께 목장 안에서 기도하며 세워가야 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지금 내가 속한 목장(공동체) 안에서, 갈등이나 거리감으로 인해 "연합"이 어렵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2. 이번 주, 내가 먼저 다가가 화해하거나 마음을 나눠야 할 목장 지체가 있다면 누구이며, 어떻게 다가가시겠습니까?
by 방송실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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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돌아가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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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돌아가면 안 됩니다 (민 14:1-10)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원망과 두려움의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자신들보다 훨씬 큰 가나안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장대한 거인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향해 메뚜기와 같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때 의견이 둘로 나뉩니다. 정탐꾼 중 다수는 "돌아가자" 하였고, 그 중 단 두 명만이 "그래도 돌아가면 안 됩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모두가 같은 현실 가운데 있었지만 전혀 다른 고백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1. 세상에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원망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4절) 원망은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습관이었습니다. 백성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탄식하며 말합니다. 더 나아가 4절에서는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버리고 자신들을 다시 종살이의 길로 이끌어 줄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려는 명백한 반역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을 잃은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부정하고 다른 지도자를 찾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원망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까? 2. 세상에는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7절) 이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모세와 아론은 온 회중 앞에 엎드립니다. 백성을 대신해 하나님 앞에 중보하며 엎드린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때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이 자기 옷을 찢습니다. 이는 백성의 죄에 대한 격렬한 항거였습니다. 그들은 회중에게 호소하며 외쳤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7절) 다른 열 명의 정탐꾼과 똑같은 땅을 보고 왔지만, 이들의 결론은 정반대였습니다. 같은 현실 앞에서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왔는지, 그 답은 다음 절에서 드러납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는 자들입니다. (8-10절) 갈렙과 여호수아의 확신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낙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8절) 그들이 붙든 것은 눈앞의 거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어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9절)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습니까? 눈앞의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이미 주신 약속입니까? 나눔 및 적용 1. 나는 지금 어떤 두려움과 현실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보다 주님을 믿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오늘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by 방송실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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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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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욥 23:1-10) 우리는 흔히 힘든 일을 당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합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만나면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분의 응답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 순간 믿음도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오늘 말씀에 나온 욥도 바로 그런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욥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 가운데 ‘믿음의 실마리’를 넣어두신 채 끝까지 버티고 살 수 있는 소망을 허락하십니다. 1. 앞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더욱 갈망해야 합니다. (3절) 욥은 3절에서 탄식이 아니라 사모함을 고백합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의 본래의 뜻은 "오, 내가 하나님을 찾아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만 있다면!"이라는 간절한 소원의 언어입니다. "발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차’는 우연히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헤매며 찾던 것을 붙잡는다’는 뜻으로 절박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이 극심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쉽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고난 당한 자가 하나님의 처소를 찾아 나서기를 바라십니다. 욥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은 그 갈망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이끄시는 손길임을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8-9절) 8-9절에서 욥은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곧 사방을 다 살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고백입니다. 흥미롭게도 욥은 31장, 자신의 무죄를 하나님 앞에 걸고 맹세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31:4).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길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전제 위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욥은 23장에서 하나님을 감정적으로는 찾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만큼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느낌으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수 있지만, 동시에 말씀과 믿음의 전제로 하나님의 임재를 붙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시고) 우리를 (단련)하시는 분입니다. (10절) 앞뒤로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도 욥의 고백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확신이 "단련하신다"는 소망으로 이어지고, 그 소망이 "순금같이 나오리라"는 믿음의 선언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앞뒤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 순전한 믿음으로 빚어가시는 그분의 손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앞 길이 깜깜하여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그 단련의 과정을 통과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눔 및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2. 지금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가 내 길을 아신다"는 믿음의 전제를 붙들기 위해 이번 한 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매일큐티, 새벽기도작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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