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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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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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 (눅 18:1-8)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1절)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기도를 멈추는 이유는 응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기다림 가운데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2-5절) 예수님은 한 과부의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과부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연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녀에게는 힘도, 권력도, 배경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바로 포기하지 않는 간구였습니다.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계속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국 재판관은 그녀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응답하게 됩니다. 기도의 능력은 조건이나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간절함과 지속성에 있습니다. 응답이 더디게 보일지라도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성도가 됩시다. 2.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여 기도하십시오. (6-7절)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의 반응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강조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결국 과부의 요청을 들어주었다면, 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의 부르짖음을 얼마나 더 들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7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계속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시며, 응답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끝까지 (믿음)을 지키길 원하십니다. (8절)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시면서 뜻밖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절) 이는 이 세상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신앙에 의심을 품게 되고 믿음을 잃어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것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즉, 밤낮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는 믿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곧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로 믿음을 지켜 나갑시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느껴질 때 낙심하여 기도를 멈춘 적이 있습니까? 2.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믿음을 지켜낸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3. 현재 내가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으며 끝까지 간구해야 할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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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한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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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한 세대 (단 1:8-17)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다음세대의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가치관을 바꾸려 하며, 하나님보다 성공과 쾌락, 자기중심적인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사실 바벨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은 다니엘과 친구들을 죽이려 하기보다, 바벨론 사람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며 결국 신앙의 정체성까지 흔들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다니엘의 마음에 거룩한 뜻을 품게 하시고, 세상 앞에서 분명한 결단을 내리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뜻)을 정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8절). 하나님은 다니엘의 마음 가운데 거룩한 뜻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 뜻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왕의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거절한 것은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다니엘의 이름과 환경은 바꿀 수 있었지만, 그의 중심까지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먼저 뜻을 정하고 신앙의 기준을 세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뜻을 정한 사람은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한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는 않았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가치관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ai 시대, 미디어 시대, 경쟁의 시대 속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뜻을 정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세상이 강해질수록 믿음의 사람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3. 하나님은 뜻을 정한 세대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십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학문과 모든 서적을 깨닫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능력까지 더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정한 사람에게 세상을 이길 하늘의 지혜를 주십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을 지키는 다음세대를 통해 시대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부모 세대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다음세대는 세상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한 세대에게 하늘의 지혜를 부어 주시고,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나눔 질문 - 가정과 학교 혹은 회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다니엘처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요?
by 방송실
202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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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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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요 16:12-15)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모든 진리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2–15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배우게 하시고,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 알게 하십니다. (12절) 예수님은 하실 말씀이 많았지만 제자들의 상태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와 영적 성숙의 정도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으시고, 때를 따라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빨리 더 많이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ai를 통해 분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리를 때에 맞게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정보보다 “감당할 준비”를 먼저 보십니다. 참된 배움은 속도가 아니라 성숙입니다. 2.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13절)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참된 스승이십니다. “인도하신다”는 것은 함께 걸으며 삶 속에서 가르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과 자기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위로하고 정당화해주는 말을 찾기도 합니다. 심지어 ai 역시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지나치게 공감적이거나 맞춰주는 방식으로 반응하죠. 이를 ‘ai 아첨’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만 시선을 머물게 만들어 버립니다. 반면 성령님은 우리가 듣고 싶은 말보다, 우리 안에서 반드시 들어야 할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ai가 우리 손과 머리에 영향을 준다면, 성령님은 우리 심령 가운데 내주하시며 역사하십니다. ai는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성령님은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하게 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3.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14–15절) 성령님의 사역의 중심은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것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것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연합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것을 아들이 가지시고, 성령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결국 성령님은 우리의 시선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또한 성령님은 우리를 단지 기분 좋게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을 비추시며 죄와 연약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는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크게 바라보도록 인도하십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요즘 하나님의 진리보다 내가 듣기 원하는 말이나 위로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가요? 2. 이번 한 주 동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분별하고 순종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by 방송실
202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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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부모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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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부모공경 (창 49:33-50:3) 야곱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마지막 순간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언을 남기고 평안히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길 곁에는 요셉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단지 성공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부모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 은혜를 입은 자녀의 부모공경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1. 부모공경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창세기 46장에 보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지만 아버지 야곱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센으로 올라가 아버지를 만나자 목을 안고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아버지를 향한 사모함은 식지 않았습니다. 오늘 시대는 부모를 너무 쉽게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부모의 존재를 귀하게 여깁니다. 효도는 물질 이전에 마음입니다. 부모님을 보고 반가워하는 마음, 그 음성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부모공경의 시작입니다. 2. 부모공경은 부모님의 마지막 발걸음까지 예우를 다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1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숨을 거두자 요셉은 아버지 얼굴에 엎드려 울며 입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장례의 모든 과정을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고관들과 장로들이 함께할 정도로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존귀하게 모셨습니다. 요셉의 효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을 다했습니다. 부모공경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만의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존경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입은 자녀는 부모를 끝까지 귀하게 여깁니다. 3. 부모공경은 형제 간에 (우애)를 지키는 일입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난 뒤 형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요셉이 이제 복수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고백하며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부모가 진정 원하는 것은 자녀들 사이의 다툼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재산과 감정 문제로 형제가 갈라지는 것은 부모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참된 효도는 형제 간의 우애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용서하고 품으며 관계를 세워갑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부모님을 향해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실제로 어떻게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 이번 주에 부모님 혹은 가족에게 사랑과 공경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행동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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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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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 (막 10:13-16)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사람의 내면보다 조건을 보고, 관계보다 계산을 앞세웁니다. 한때 모두 어린아이였지만 어느 순간 그 순수함을 잃어버립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 어른의 기준에 맞춰 통제하려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지만 제자들은 그들을 막아섰습니다. 이 모습은 단지 제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1.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시는 분입니다. (14절)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왔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예수님은 아이들의 접근을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아이들은 방해가 아니라 환영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도 아이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가올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아니면 눈치를 보게 만드는 분위기인가요? 예수님의 교회는 아이들을 막는 곳이 아니라, 반겨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4-15절)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많이 아는 사람, 많이 이룬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자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안아)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16절)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막지 않으신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품으셨습니다. 아이를 안는다는 것은 따뜻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를 안아주듯이 예수님은 언제나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안수하시며 축복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삶 위에 임하도록 선포하신 기도이자, 복된 삶을 향한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 자녀를 축복하던 전통처럼 그들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우리 꿈의숲교회도 아이들을 품어주고, 인정하고, 축복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아니면 너무 계산적인 믿음을 지녔나요? 2. 이번 한 주 동안 내가 품고 축복해야 할 어린아이들을 정하고 기도합시다. (드림 서포터즈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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