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광야교회 (행7:30-38)
오늘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광야를 하나님의 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분명하게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며 일하셨던 자리로 증언합니다. 스데반은 그 공동체를 ‘광야교회’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광야교회가 어떤 공동체였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광야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자리입니다(30~34절).
모세는 애굽에서 도망쳐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실패한 시간, 가장 침묵이 길었던 4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광야가 거룩해진 이유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광야는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만나시는 자리인줄로 믿습니다.
2. 광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35~36절).
하나님은 모세의 억울함을 즉시 해결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방식의 일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의 시간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은 시간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셨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일이 멈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깊이 일하고 계신 자리입니다. 광야교회는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내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배워가는 공동체입니다.
3. 광야교회는 (말씀)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37~38절).
스데반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전히 전파되길 소망했습니다. 이처럼 광야교회는 말씀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없을지라도, 때로는 환경이 불안정해도, 광야 한가운데서도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광야교회를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지금 나의 삶에서 ‘광야’라고 느껴지는 자리는 어디이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만나고 계신다고 느끼십니까?
2. 나는 지금 이 광야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먼저 기대하며 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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