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 됨을 지키는 사람
2026-02-15 10:46:02
방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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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실
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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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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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교회 (행7:30-38) 오늘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광야를 하나님의 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분명하게 임재하시고 말씀하시며 일하셨던 자리로 증언합니다. 스데반은 그 공동체를 ‘광야교회’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광야교회가 어떤 공동체였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광야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자리입니다(30~34절). 모세는 애굽에서 도망쳐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실패한 시간, 가장 침묵이 길었던 40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광야에서 하나님은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광야가 거룩해진 이유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광야는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만나시는 자리인줄로 믿습니다. 2. 광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35~36절). 하나님은 모세의 억울함을 즉시 해결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방식의 일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의 시간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은 시간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셨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일이 멈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깊이 일하고 계신 자리입니다. 광야교회는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인내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배워가는 공동체입니다. 3. 광야교회는 (말씀)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37~38절). 스데반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전히 전파되길 소망했습니다. 이처럼 광야교회는 말씀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없을지라도, 때로는 환경이 불안정해도, 광야 한가운데서도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광야교회를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지금 나의 삶에서 ‘광야’라고 느껴지는 자리는 어디이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만나고 계신다고 느끼십니까? 2. 나는 지금 이 광야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먼저 기대하며 서 있습니까?
by 방송실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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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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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9:9-13)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이나 능력 있는 기적 행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죄인을 부르러 온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과 복음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1.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향하여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9절)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로마제국에 협력하여 동족의 재산을 착취하던 세리로서 사회적으로 배척받던 죄인이었습니다. 회당에도 들어갈 수 없었고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을 살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마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먼저 찾아오셔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은혜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복음은 선한 사람이 제자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인이 부르심을 받아 변화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예수님께서는 죄인과 함께 (밥)을 드시는 분이십니다. (10-11절) 예수님께서는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당시 식사는 관계를 인정하고 공동체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는 것은 그들을 배척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셨다는 뜻입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였지만, 그들은 거룩함을 죄인과의 분리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거룩함은 죄와 타협하는 거룩이 아니라, 죄인을 회복시키는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정죄의 자리가 아니라 회복과 은혜의 자리입니다. 교회 또한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 치유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식탁으로 초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용서 받은 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13절) 예수님께서는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보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가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을 통해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마태는 세리에서 사도로 변화되었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셔서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우리 꿈의숲교회 가운데 실제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는 음성 앞에서, 나는 아직도 붙들고 있는 과거의 삶이나 내려놓지 못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죄인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처럼, 나는 판단보다 환대와 사랑으로 누군가를 삶의 자리로 초대하고 있습니까?
by 방송실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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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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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는가? (마 6:19–21)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믿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어디에 보물을 쌓고 있는지를 먼저 물으십니다. 이는 신앙의 문제를 감정이나 말의 고백 차원이 아니라, 삶 전체의 가치 판단과 방향성의 문제로 다루십니다. 펀드매니저가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장기적인 수익을 바라보듯,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어떤 가치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을 기준으로 삶을 운용하도록 부름받은 영적 펀드매니저임을 이 본문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1. 땅의 보물은 반드시 (손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십니다. 땅의 보물은 좀이 먹고, 동록이 슬며들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갑니다.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산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유 그 자체를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에 인생을 걸어 두는 삶의 방향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땅의 보물은 언젠가 반드시 손실이 확정되는 투자이며, 그곳에 마음을 두는 순간 삶은 염려와 불안에 묶이게 됩니다. 2. 하늘의 보물은 영원한 (배당)을 보장합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늘의 보물은 좀도 먹지 못하고, 동록도 침범하지 못하며, 도둑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는 단지 장차 받을 상급만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며 살아가는 삶의 선택을 가리킵니다. 순종과 섬김, 사랑과 신실함, 그리고 복음을 위한 헌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자산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세상의 변화와 환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투자임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늘)을 향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본문의 결론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행동이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의지나 결심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투자된 방향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염려와 기쁨이 머무는 곳이 곧 우리의 보물입니다. 마음을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투자 방향을 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보물을 하늘로 옮길 때,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진정한 영적 투자처는 어디입니까? 나눔 및 적용 1.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보물’은 무엇인가요? 2. 이번 주 한 가지라도 땅의 보물이 아닌 하늘의 보물에 의도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내가 바꿀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요?
by 방송실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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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람에서, 기적의 공동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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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람에서, 기적의 공동체로 (히 11:39-40) 우리는 지난 한 주 동안 성경 속에 나온 기적의 사람들에 대해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삶의 자리에서 분명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위대한 인물들은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약속의 완성은 보지 못한, 다시 말해 ‘미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한 세대 안에서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기적의 사람들 모두가 미완의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이삭의 인내, 야곱의 씨름과 요셉의 기다림, 모세의 헌신과 여호수아의 담대함은 모두 위대한 믿음의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 완결된 결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어 가실 이야기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사람들은 믿음을 완성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해 믿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개인의 일대기 안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를 따라 흐르며 완성되어 가는 역사입니다. 2. 하나님은 믿음의 역사를 우리와 함께 완성해 나가십니다. 40절에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를 미완으로 남겨두시고, 그 완성의 자리에 오늘의 성도들을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즉, 오늘날의 성도는 믿음의 완성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혼자 잘 믿고 끝내는 개인적인 완주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해 이어지는 동행의 발걸음입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믿음의 자리는 나 혼자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 이어져야 할 자리입니다. 3. 믿음의 완성을 위해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는 11장에 등장하는 모든 믿음의 증인들을 전제한 선언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지만,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분은 그들보다 더 위에 계신 분, 곧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미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 달려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작한 여정은 마침내 예수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완성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내 신앙을 개인의 완주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믿음의 계승으로 살고 있나요? 2. 믿음의 완성을 위해 지금 내가 내려놓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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