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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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공경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조회수 82
하나님을 공경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잠 3:7-10) 지난주 우리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지도받는 인생이 되자고 결단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신뢰가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공경은 입술의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과 삶과 물질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인생의 세 가지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의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로 채우는 인생이 되십시오. (7절a) 7절에 나온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는 직역하면 "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라"입니다. 지난주 5절이 결정의 순간에 무엇에 기대느냐의 문제였다면, 오늘 말씀은 그 밑에 있는 뿌리, 곧 나 자신을 어떻게 여기느냐의 문제를 다룹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결국 자기 명철을 의지하게 되고, 나의 앞길을 누구에게도 물을 이유가 없기에 하나님의 지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향해 미련한 자보다 소망이 없다고 표현합니다(잠 26:12). 하나님을 공경하는 첫걸음은 "나는 모든 것을 안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나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십시오. (7절b-8절) 말씀은 내 지혜를 내려놓은 자리를 비워 두라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채우라고 하십니다. 경외는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 증거가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하면서 악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적 모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8절) 악은 우리의 영혼을 메마르게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속사람부터 살아나며 골수가 윤택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3. 정당한 노동으로 얻은 재물과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십시오. (9-10절)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습은 물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9절의 '소산물'은 땀 흘려 일한 결과로 얻은 열매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수고로 얻은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드림은 얼마를 드리느냐 이전에, 그 재물을 어떻게 얻었느냐부터 하나님 앞에 합당해야 합니다. 드림은 "나의 수고도, 그 열매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이며, 아까워하는 마음은 "내가 벌었으니 내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처음 익은 열매는 추수가 끝나기 전, 아직 전부를 손에 쥐지 않았을 때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남은 것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창고가 가득 차고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는 은혜를 약속하십니다. 마음과 삶과 물질로 하나님을 공경하여,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은혜를 누리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놓쳤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이번 한 주 동안 내 삶에서 떠나야 할 악은 무엇이며, 처음 것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결단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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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지도받는 인생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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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지도받는 인생이 되십시오 (잠 3:5-6) 큰 화물선이나 유조선이 항구에 들어올 때, 경력이 오래된 선장도 혼자서는 배를 접안시키지 않습니다. 그 항구의 물살과 수심, 암초의 위치를 가장 잘 아는 '도선사'가 배에 올라타 마지막 구간을 직접 지도합니다. 대양을 건너온 선장도 그 짧은 구간만큼은 자기 경험을 내려놓고 온전히 도선사에게 배를 맡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양을 무사히 건너온 배도 항구 코앞에서 좌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나름의 경험과 판단력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그 방식만 고집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흔들리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으며 행동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먼저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어로 "다하여"는 "전부, 모든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신뢰는 절반의 신뢰가 아닙니다. 마음의 반은 하나님께, 반은 내 계산에 걸쳐두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을 다해 그분께 기대는 신뢰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이 놀랍습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우리는 보통 신앙의 반대를 '불신앙', 곧 하나님을 대놓고 부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신뢰의 반대를 '내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면서도 정작 삶의 결정 앞에서는 내 판단과 경험을 더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이미 본문이 말하는 불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2.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큰 결정들 - 예를 들어 진학, 결혼, 이직, 인생을 흔드는 큰 사건 앞에서만 하나님을 찾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순간, 회사에서 동료와 나누는 대화, 퇴근 후 자녀와 보내는 시간, 식탁에서의 대화 같은 지극히 사소한 순간들에는 하나님을 굳이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범사에", 곧 그 모든 사소한 순간까지 포함해서 그분을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큰 결정만 하나님께 맡기고 일상은 내 방식대로 사는 신앙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작은 걸음까지 그분 앞에 내어놓는 삶. 그것이 본문이 말하는 신앙의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그 신뢰와 인정의 길을 친히 (지도)하십니다. "지도하시리라"는 단어가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샤르”라고 하는데 "곧게 하다, 평탄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사사기 말씀에 나오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의 '옳은'과 같은 뿌리를 가진 단어입니다. 당시 사사기 시대의 사람들은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며 각자의 길을 걷다가 결국 패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반면 오늘 말씀에서는 그 '옳음'을 판단하는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 그분이 친히 우리의 굽은 길을 곧게 펴신다고 약속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인 길이 여전히 구불구불하고 험난해 보여도, 인생이란 바다의 물살과 암초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지도를 받는다면 우리의 인생길은 반드시 평탄한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최근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하나님께 먼저 묻기보다 내 경험과 판단으로 먼저 답을 정해버린 순간이 있었다면 나눠봅시다. 2. 이번 한 주간 살면서 사소해 보이는 선택 하나를 정할 때 "하나님, 이 길도 주님께 맡깁니다"라고 짧게 기도해봅시다.
by 방송실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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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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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대상 12:17-22)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초라하고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시글락이라는 변방에 몸을 숨기고 있던 때입니다. 왕이 될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라 “날마다” 모여들어 마침내 큰 군대를 이루었고 본문은 이를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고 말씀합니다. 가장 약해 보이던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군대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세 가지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군대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 되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됩니다. (17절) 다윗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무조건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라고 말합니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왔느냐’였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진실함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교회의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관계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진정한 하나 됨이 시작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 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2. 하나님의 군대는 성령께서 (감싸신)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18절) 다윗의 말이 끝나자 삼십 명의 우두머리였던 아마새를 성령께서 감싸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감싸시니”는 본래 “옷을 입다”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아마새를 옷 입듯 입으신 것입니다. 아마새의 헌신과 연합은 인간적인 결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조직력이나 사람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싸실 때에 세워집니다. 3.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셔서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게 하십니다. (19–22절) 다윗이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고 시글락이란 곳으로 돌아갈 때 므낫세 지파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합류합니다. 본문은 그들을 “다 큰 용사요 군대 지휘관”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2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핵심은 “날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들을 계속 날마다 보내셨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되어 마침내 큰 군대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 교회를 세워갈 사람들을 교회로 보내주시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군대’와 같이 세워가실 줄을 믿습니다. 나눔 및 적용 1. 다윗에게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날마다 더해졌던 것처럼 나는 지금 우리 교회 공동체에 어떤 마음으로 더해지고 있습니까? 2. 이번 한 주 동안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섬길 수 있는 한 사람 혹은 한 모임은 누구이며 어디입니까?
by 방송실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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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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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느 2:11-20) 사람들은 누구나 수치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수치란 감추고 싶은 실패, 드러나면 안 될 것 같은 연약함, 남들 앞에서 작아지게 만드는 기억들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7절에 나온 수치는 '남들로부터 오는 비난, 치욕스러움, 조롱과 조소'를 의미합니다. 즉, 당시 예루살렘은 완전히 붕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주변 많은 민족들에게 '수치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치를 고스란히 느헤미야와 유대 백성들이 경험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들의 수치를 어떻게 해결해 주셨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다시 (수치)를 당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12, 17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에 홀로 일어나 무너진 성벽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은밀한 답사의 동기는 다른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주신 것 - 즉,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거룩한 부담감'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회복의 일을 시작하시며, 한 공동체의 부흥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렇게 12절에서 시작된 이 마음은 17절에 이르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는 구체적인 결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일을 위해 모두가 힘을 내길 원하십니다. (18절) 느헤미야는 혼자만의 확신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우신 일과 왕이 허락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이처럼 하나님이 한 사람의 마음에 주신 비전과 꿈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힘을 내는 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에 개인의 소명이 공동체의 사명이 되고, 그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비로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형통)의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 나라의 선한 일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20절)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공격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안팎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연결되어 있던 정치 권력자였던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비웃고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또다시 대적자들의 조롱과 비웃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느헤미야는 자신의 권력이나 왕과의 친분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가 붙든 것은 '하늘의 하나님' 한 분이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하나님이 지금 내 마음에 주신 ‘거룩한 부담감’은 무엇입니까? 2. 이번 주 함께 힘을 내야 할 선한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by 방송실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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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도 선한 손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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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도 선한 손이 있습니까?(느 2:1-10) 우리의 인생에는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손, 친구의 손,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통해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람의 손을 통해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손은 나를 도와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손은 나를 확고히 붙드십니다. 사람의 손은 변하고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손은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로 사람의 손을 통해 우리를 도우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람의 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을 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느헤미야를 이끌어 가신 하나님의 선한 손을 살펴보고, 우리 인생에도 그 선한 손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기도하는 자에게도 때론 감출 수 없는 (근심)이 얼굴에 드러날 수 있습니다. (1–3절) 사실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근심한 기색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신하로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그의 얼굴에 근심이 드러났습니다. 예루살렘의 소식 때문이었죠. 그 상황을 듣고 넉 달 동안이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무게가 결국 그의 표정과 삶에 나타난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억지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걱정거리가 있을 때에도 그 마음을 솔직히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문 사람에게는 기도의 여러 흔적들이 남습니다. 2. 결정적 순간의 기도는 (평소)의 기도에서 나옵니다. (4–6절) 왕은 느헤미야에게 갑자기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4절) 느헤미야에게는 긴 기도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대답합니다. 넉 달 동안 하나님을 찾았던 기도가 결정적인 순간의 기도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과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내 삶의 신앙을 나타냅니다. 3. 하나님은 기도하는 인생에게 자신의 (손)을 통해 도우심을 나타내십니다. (7–10절) 느헤미야는 왕에게 조서와 목재를 요청했고, 왕은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모든 과정 뒤에서 하나님의 선한 손을 발견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8절) 하나님의 선한 손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응답과 인도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손이 함께하신다고 해서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대적, 즉 삶의 문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 가운데서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느헤미야처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해 온 근심이나 기도 제목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지금 내가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어떻게 붙들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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